거꾸로 가는 세상 - 장영희
'화장품 거꾸로 세워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다 쓰고 말겠다는 아내를 보며 가난한 우리들의 사랑을 생각했다. 세상은 늘 거꾸로 돌아가고 참기름병 꿀병 할 것 없이 거꾸로 세워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다 쓰고 말겠다는 아내.' 서정홍 시인의 '아내에게 미안하다' 라는 시입니다. 여러분들의 주변에도 거꾸로 세워진 병들이 많겠지요. 참기름병, 꿀병 할 것 없이 약병, 샴푸병...마지막 한 방울까지 쓰려고 거꾸로 놓은 병들이 많습니다. 시인의 말대로 세상은 자꾸 거꾸로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내 한 목숨 바쳐 내 이웃이 잘 살 수 있다면...' 하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은 농민.혼자 살다가 개에 물려 죽은 아홉 살짜리 소년을 보며 세상에 너무 슬픈 일이 많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이 거꾸로 가고 있기 때문 아닐까요? 열심히 일하는 사람보다 놀고 먹는 사람이 더 잘 살고 착한 사람은 자꾸 뒷전으로 밀리고 오히려 악한 사람이 더 힘세고 목소리가 큽니다. (Ribot, Théodule-Augustin / The Good Samaritan) 이렇게 거꾸로 세워진 병들, 거꾸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가난하지만, 어쩌면 사랑의 마음은 거꾸로 더 커지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려워서 남을 더 잘 이해하고 우리가 아파서 남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날씨가 추워져서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이 더 살기가 어려운 때가 오고 있습니다. 언젠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학생이 말하더군요. "선생님 '내 힘들다' 를 거꾸로 말하면 뭐가 되게요? " '내 힘들다' 를 거꾸로 하면 '다들 힘내'가 되지요. 지금 내가 힘들어도 거꾸로 '다들 힘내'하며 서로 격려하고 함께 걸어가는, 그런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서강대 장영희 교수)